1. 퇴사 후 시골로 향한 29살 청년의 선택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퇴사 후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꿈은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추곤 한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 A씨는 그 흔하지 않은 ‘실행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29세에 서울의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충청북도의 한 시골 마을로 내려가 양봉을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었고,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삶, 자연과의 관계, 스스로의 시간을 다시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글은 단순한 귀농 성공담이 아니다. 귀촌 1년 차 청년의 날것 그대로의 현실, 고민과 변화, 그리고 벌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퇴사, 그날의 결정
A씨는 서울에서 5년째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회사는 안정적이었고, 연봉도 업계 평균보다 높았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무난했고, 큰 갈등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사실, 일이 싫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는 야근 후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을 적어봤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며 돈은 벌고 있었지만,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점점 무너졌고,
‘다음 달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가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28살 봄.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대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퇴사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주변 친구들도 “그 좋은 회사를 왜 나가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A씨는 결국 이직 대신 ‘완전히 다른 삶’을 택했다.
“그냥 회사를 옮겨도 똑같을 것 같았어요.
저는 제 시간, 제 계절, 제 호흡으로 사는 삶을 원했어요.
그게 도시에서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는 퇴사를 결심한 지 3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서울을 떠나 충북 제천의 작은 마을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3. 왜 하필 양봉이었을까?
많은 귀농 청년들이 채소나 과일 재배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A씨는 농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생소한 분야인 양봉을 선택했다.
그가 처음부터 꿀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퇴사 후 귀촌 관련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작목을 검토했고, 그중에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분야가 무엇일지 깊이 고민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조용한 존재들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벌은 말이 없고, 서두르지 않죠.
오히려 제가 그들의 리듬에 맞춰야 하니까 좋았어요.”
A씨는 양봉의 가장 큰 매력을
자연의 순환과 생명 주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촉박하고 인위적이었다면,
양봉은 계절과 날씨, 벌들의 움직임에 따라 내 일상이 결정되는 구조였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양봉은 초기 비용이 다른 작목에 비해 비교적 적고,
토지가 넓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 A씨가 양봉을 선택한 이유 정리
- 혼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일 – 사람 대신 벌과 함께하는 일상이 주는 심리적 안정
- 시장을 가리지 않는 생산물 – 꿀, 프로폴리스, 화분 등 다양한 수익 구조
- 소규모 창업이 가능 – 밭이 넓지 않아도 되고, 장비 투자도 한정적
-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 – 자연의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 방식
“도시는 제게 너무 시끄러웠어요.
벌통 앞에 앉아 있으면, 아무 말도 안 해도
그냥 마음이 정리돼요.”
A씨는 양봉이 ‘벌을 기르는 일’이라기보다,
‘나를 다시 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퇴사 이후 찾아낸 자기만의 삶의 리듬이 담겨 있었다.
4. 귀촌 1년 차, 현실은 달랐다
귀촌을 준비하던 시절, A씨는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그렸다.
아침에 벌을 보살피고, 오후엔 책을 읽으며 차 한잔하는 하루를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내려와 살아보니, 현실은 예상과는 꽤 달랐다.
“제일 먼저 부딪힌 건 외로움이었어요.
서울에선 사람을 피해 다녔는데,
막상 시골에 혼자 있으니까… 그 적막이 사람을 눌러요.”
처음 몇 달은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끝나는 날도 있었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또래가 거의 없었고, ‘젊은 사람이 왜 여길 왔을까’ 하는 시선도 종종 느꼈다.
📉 경제적 현실도 녹록지 않았다
양봉은 초기 수익이 거의 없는 구조다.
첫 해는 생산량이 적고, 기후에 따라 꿀 수확이 크게 좌우된다.
그해 봄, 예상보다 기온이 낮아 꿀벌 활동이 줄면서 수확량이 반 토막이 났다.
A씨는 말한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 정말 많이 했어요.
매달 고정 수입이 없으니까 마음이 불안했고,
예상치 못한 장비 수리비, 벌통 교체비 같은 지출이 계속 생겼죠.”
그는 서울에서 받던 월급의 1/4도 벌지 못했던 첫 해를 지나며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래도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느리게 흘렀지만,
그 안에는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들이 있었다.
벌통 옆에 앉아 있으면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수입은 줄었지만,
하루를 살아냈다는 느낌은 오히려 더 컸어요.”
그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꿀벌들과의 생활에도 매일 배워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귀촌 1년 차는 정착이 아니라 적응의 시작이었다.
5. 다시 벌 앞에 서는 이유
귀촌 1년 차. 수입은 불안정했고, 외로움은 예상보다 깊었다.
한겨울엔 눈 덮인 벌통을 바라보며 ‘이 선택이 맞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일 아침 그는 다시 벌 앞에 섰다.
“벌은 하루하루 다르게 움직여요.
어제 조용했던 벌통도, 오늘은 갑자기 분주하죠.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A씨에게 꿀벌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계절이 바뀌면 벌은 움직이고,
벌이 움직이면 그는 따라 움직였다.
벌을 기르면서 그는 처음으로 시간을 ‘내 속도’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귀농은 선택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이었다
도시에서는 늘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했다.
성과 평가, 일정, 상사의 눈치.
하지만 벌 앞에서는 누구도 그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성공이든 실패든, 오롯이 자기 책임이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삶이었다.
“귀농은 정답이 아니에요.
그저 저는, **지금 이곳에서 ‘사는 중’이라는 실감이 드는 것뿐이에요.”
회사 다닐 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났거든요.”
🌿 그가 전하고 싶은 한 마디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A씨는 이렇게 말한다.
- “낭만도 없고, 절대 쉽지 않아요.”
- “하지만 어느 날,
벌이 꿀을 모으듯,
나도 조용히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거예요.”
그 말은 단순히 귀촌을 추천하는 조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환경 안에서,
조금 더 솔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면
그건 이미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마무리 메시지
벌 앞에 서는 일은 작지만 단단한 루틴이다.
그 루틴이 모여 어느 날,
도시에서 놓쳤던 나 자신을 조금씩 다시 마주하게 한다.
귀농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는 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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